CLARITY법 좌초: 은행 로비의 스테이블코인 수익 금지와 크립토 미래 전쟁
CLARITY법 좌초: 은행 로비가 촉발한 스테이블코인 수익 금지와 크립토 산업의 생존 전쟁
2026년 3월, 미국 암호화폐 산업이 기대했던 역사적 법안이 좌초 위기에 놓였습니다. 하원을 294대 134의 압도적 표차로 통과한 디지털자산시장명확화법(CLARITY Act)이 상원에서 사실상 멈춰선 것입니다. 핵심 쟁점은 단 하나, 스테이블코인 수익(yield)을 허용할 것인가입니다. 미국은행협회(ABA)가 백악관의 타협안마저 거부하고, 트럼프 대통령이 SAVE법을 입법 최우선 순위로 선언하면서, 예측시장에서 CLARITY법의 2026년 통과 확률은 18%까지 급락했습니다.
배경: CLARITY법은 왜 중요한가
2025년 7월 17일 하원을 통과한 CLARITY법은 디지털자산 시장에 대한 연방 차원의 포괄적 규제 프레임워크를 수립하는 법안입니다. SEC와 CFTC 간 관할권을 명확히 분리하고, 토큰의 증권·상품 분류 기준을 제시하며, 스테이블코인 발행사와 거래소의 운영 기준을 정립하는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이미 2025년 7월 트럼프 대통령이 서명한 GENIUS법이 스테이블코인 발행사의 직접적인 이자 지급을 금지했지만, 코인베이스나 크라켄 같은 제3자 플랫폼이 수탁 중인 스테이블코인에 수익을 제공하는 것은 규제하지 않았습니다.
CLARITY법의 상원 버전에서 은행업계가 요구한 것은 바로 이 '유통업자 허점(distributor loophole)'을 완전히 차단하는 것이었습니다. 즉, 발행사뿐 아니라 거래소와 관련 플랫폼까지 수익 제공을 전면 금지하자는 주장이었습니다. 이 쟁점 하나가 미국 암호화폐 규제의 미래를 결정짓는 전쟁터가 되었습니다.
은행 로비의 전면 공세
미국은행협회의 반격은 조직적이고 강력했습니다. 2026년 1월 14일, 3,200명 이상의 은행가들이 상원에 공동 서한을 보내 스테이블코인 수익 금지를 요구했습니다. 뱅크오브아메리카 CEO 브라이언 모이니한은 스테이블코인 수익이 합법화되면 최대 6조 달러가 전통 은행 시스템에서 이탈할 수 있다고 경고했습니다. 스탠다드차타드는 2028년까지 1조 달러 규모의 예금 이동이 발생할 수 있다는 분석을 내놓았습니다.
은행업계의 논리는 명확합니다. 암호화폐 플랫폼이 USDC에 4.5% APY를 제공하면, 이는 사실상 은행 예금 계좌와 경쟁하는 셈이지만, FDIC 보험도, 지급준비율 규제도, 은행 인가도 없다는 것입니다. JPMorgan Chase CEO 제이미 다이먼은 거래 기반 보상(transaction-based rewards)은 수용할 수 있다는 입장을 밝혔지만, ABA는 이마저도 '예금 유출의 법적 허가'가 될 수 있다며 선을 그었습니다.
백악관 타협안 거부와 입법 교착
백악관은 수주간의 중재 끝에 절충안을 제시했습니다. P2P 결제나 DeFi 대출 같은 거래 연동 활동에서만 제한적으로 수익을 허용하고, 유휴 잔고에 대한 이자 지급은 엄격히 금지하는 내용이었습니다. 암호화폐 업계는 이 타협안을 수용했습니다. 그러나 2026년 3월 5일, ABA는 이 타협안을 공식 거부했습니다. 제한적이나마 수익을 허용하는 것 자체가 암호화폐 기업들에게 예금자를 빼앗을 '법적 청신호'가 된다는 논리였습니다.
이에 앞서 2026년 1월 15일, 상원 은행위원회는 CLARITY법 표결을 무기한 연기했습니다. 코인베이스 CEO 브라이언 암스트롱이 상원 버전에 대한 지지를 철회하면서 상황이 더욱 복잡해졌습니다. 암스트롱은 토큰화 주식 제한, DeFi 조항을 통한 광범위한 사용자 금융 데이터 정부 접근, CFTC보다 SEC에 유리한 관할 구조, 그리고 코인베이스 2025년 3분기 매출의 약 20%를 차지하는 스테이블코인 보상 제거 등을 문제로 지적하며 "나쁜 법안보다는 법안이 없는 게 낫다"고 선언했습니다.
트럼프의 SAVE법 최우선 선언과 입법 일정 동결
2026년 3월 8일, 트럼프 대통령은 Truth Social에 SAVE America법(연방 유권자 등록 시 시민권 증명과 정부 발행 신분증을 요구하는 투표 개혁 법안)이 "다른 모든 것에 우선한다"며 "반드시 최우선 순위로 처리되어야 한다"고 게시했습니다. 이 선언으로 암호화폐 업계가 기대했던 입법 일정이 사실상 동결되었습니다.
예측시장 폴리마켓에서 CLARITY법의 2026년 통과 확률은 급격한 변동을 보여왔습니다. 트럼프 대통령의 공개 지지 후 72%까지 상승했던 확률은 ABA의 타협안 거부와 SAVE법 최우선 선언 이후 급락했습니다. 현재 폴리마켓에서는 약 61%의 통과 확률을 보이고 있지만, SAVE법 선언 직후에는 18%까지 떨어졌던 것으로 보도되었습니다. Galaxy Digital 경영진은 4월까지 위원회를 통과하지 못하면 2026년 내 통과 가능성이 극히 낮다고 분석했습니다.
USDC와 스테이블코인 수익의 경제학
이 전쟁의 중심에는 USDC의 경제적 현실이 있습니다. 서클(Circle)의 경우, 2022년부터 2024년까지 전체 매출의 95~99%가 USDC 준비금 자산의 이자 수익에서 발생했습니다. 2024년 말 기준 평균 수익률 4.33%에서 100bp 금리 인하 시 연간 4억 4,100만 달러의 수익 감소가 추정되었습니다. 스테이블코인 시장은 2025년 33조 달러 이상의 거래를 처리했으며, USDC의 온체인 거래량은 전년 대비 247% 증가했습니다.
ProMarket은 3월 11일자 분석에서 "규제적 수익 금지 시도는 경제학과 경쟁할 수 없다"고 지적했습니다. 이미 글로벌 시장에서 스테이블코인 수익 상품이 활발히 운영되고 있는 상황에서, 미국만 금지할 경우 혁신과 자본이 해외로 유출될 수밖에 없다는 논리입니다. 유럽과 아시아가 이미 더 명확한 규제 프레임워크를 마련하고 있다는 PYMNTS의 보도는 이러한 우려를 뒷받침합니다.
OCC 은행 인가 경쟁: 플랜 B의 부상
입법이 교착 상태에 빠지자 암호화폐 기업들은 대안을 모색하고 있습니다. 83일 만에 11개 기업이 OCC 연방 신탁은행 인가를 신청하거나 승인받았습니다. 2025년 12월 OCC는 서클, 리플, BitGo, 피델리티 디지털 에셋, 팍소스에 조건부 승인을 부여했고, 2026년 초에는 스트라이프의 Bridge, Crypto.com, Protego가 추가 승인을 받았습니다. 모건스탠리가 2월 18일, 페이오니어가 2월 24일, 제로해시(Zerohash)가 3월 5일 신청서를 제출했습니다.
2026년 4월 1일 발효되는 OCC 최종 규칙은 국법 신탁은행이 암호화폐 수탁을 포함한 비신탁 활동을 수행할 수 있음을 명시적으로 확인했습니다. 그러나 JPMorgan Chase, 골드만삭스, 뱅크오브아메리카 CEO들이 이사회에 참여하고 있는 은행정책연구소(BPI)는 OCC를 상대로 소송을 검토하고 있어, 이 대안 경로 역시 순탄치 않을 전망입니다.
전망 및 시사점
현재 상황은 세 가지 시나리오로 전개될 수 있습니다. 첫째, 4월 내 상원 위원회 통과가 이루어지고 8월 중간선거 캠페인 시작 전 본회의 표결이 진행되는 낙관적 시나리오입니다. 리플 CEO 브래드 갈링하우스는 4월 말까지 통과 확률을 90%로 전망했지만, 이는 업계 내부의 희망적 관측에 가깝습니다. 둘째, 스테이블코인 수익 조항이 삭제되거나 대폭 약화된 형태로 타협이 이루어지는 시나리오입니다. 이 경우 코인베이스 등 주요 기업의 수익 모델에 직접적 타격이 불가피합니다. 셋째, 법안이 2026년 내 통과에 실패하고 OCC 인가 경로가 사실상의 규제 프레임워크 역할을 하는 시나리오입니다.
암호화폐 업계는 이미 입법 실패에 대비한 행동에 나서고 있습니다. 트럼프의 SAVE법 선언 다음 날인 3월 9일, 브라이언 암스트롱과 바이낸스 창업자 자오창펑은 각각 독립적으로 AI 에이전트가 자율적 거래를 위해 암호화폐 인프라를 사용할 것이라며, 은행 시스템의 업데이트나 새로운 입법을 기다리는 것은 현실적이지 않다고 주장했습니다.
결론: 투자자를 위한 핵심 시사점
CLARITY법을 둘러싼 전쟁은 단순한 법안 하나의 통과 여부를 넘어, 전통 금융과 디지털 자산 산업 간 구조적 충돌의 본질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USDC 및 스테이블코인 관련 투자자들은 4월 상원 위원회 표결 여부, OCC 인가 기업들의 서비스 개시 일정, 그리고 BPI의 소송 제기 여부를 핵심 모니터링 지표로 삼아야 합니다. 스테이블코인 수익이 금지되더라도 경제적 현실은 규제를 앞서가고 있으며, 33조 달러 규모의 시장을 억지로 되돌리기는 어렵습니다. 단기적 입법 불확실성 속에서도 OCC 인가를 통한 제도권 진입이 가속화되고 있다는 점은 장기 투자자에게 중요한 신호입니다.